"예타 풀어달라" 강기정, "산단 더 달라" 김영록...호남 낙후는 누가 책임지나 민슬기 기자 journalnews@naver.com |
2025년 06월 26일(목) 0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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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장기적 낙후는 복합 요인이 얽힌 결과다. 중앙정부의 미온적 대응도 책임이 없지 않지만, 더 치명적인 장애물은 무능과 안일함에 안주한 지역 리더십이다. 부산·울산에서는 대통령 지시나 기업 제안만으로 대규모 사업이 속전속결로 추진되지만, 호남 지자체장들은 구체적 청사진 없이 지원만 읍소해 정부를 설득조차 하지 못했다. 정부가 호남을 ‘수혜 대상’쯤으로 취급하는 구태도 문제지만 무기력한 리더십이 ‘공천’이라는 기득권 통로에 기대 연명하는 현실이 지방 소멸을 부추기는 더 큰 비극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지방분권이 실효를 거두려면 지역 스스로 자생 가능한 발전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지방분권이 왜 여전히 요원한 꿈인지 적나라하게 보여 줄뿐이다.
강기정 광주시장의 모습이 단적인 예다. 그는 'AI-모빌리티 국가산단' 관련해 예타 면제와 규제 완화만을 되풀이하며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는 데 급급했다. 정작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담보할 기업 수요, 견고한 재원 구조, 구체적 운영 모델은 단 한 번도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광주 AI 사업, 진짜 될지 모르겠다. 활용도 떨어지고 운영비 없어 가동도 못 한다는데, 구체적 지원 방안을 말해 달라"고 재차 강조했으나 시장의 답변은 막연했다. '선 국가 지원, 후 지역 자구책'이라는 기이한 행태는 결국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시민의 오랜 염원이자 이재명 대통령의 광주 공약이었던 호남고속도로 확장 사업마저 광주시의 무책임한 행정으로 좌초 위기에 처한 것도 뒷받침 한다. 신수정 광주시의회 의장이 질타했듯 올해 정부 예산 367억 원이 전액 삭감된 것은 광주시가 단 몇 억 원도 집행하지 않아 사업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동광주 나들목에서 광산 나들목까지 이어지는 출퇴근 시간 '교통지옥'은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광주시는 "시 재정 여력상 감당하기 어렵다"며 국가 사업 전환만을 국토부에 요구하고 있다. 시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정부 공약마저 지방 정부의 무능과 무관심으로 좌초시키는 상황은 결코 묵과할 수 없다.
김영록 전남지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산단 분양률 98%라 동부권에 산단이 부족하니 추가 개발과 해남 기업도시 지정을 해달라", "한전의 전력계통 포화로 태양광 발전 허가가 나지 않으니 해결해 달라"는 '마땅히 중앙정부에 건의해야 할 일'의 목록만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정작 지역 경제에 실질적 활력을 불어넣을 투자 유치 방안과 에너지 인프라 로드맵은 여전히 공백이다.
대통령이 "개발만 한다고 기업이 들어오는 것 아니다", "규제 완화만은 위험하다", "추상적 대안 아닌 구체적 지원을 말해 달라"고 거듭 질책했음에도 지사의 답변은 공허했다. 수년째 반복되는 '요구와 건의'만으로는 지역 발전의 동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지역에 진짜 필요한 인재를 세우는 일이야말로 균형발전의 실질적 조건이자 첫걸음이다. 이는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는 공천을 넘어, 지역의 현실과 미래를 책임질 역량 있는 인재가 선택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이재명 정부는 “수도권 일극 체제 탈피와 균형발전 가속”을 약속했다. 그 약속이 선언으로만 남을지, 국가 대전환의 불꽃이 될지는 이제 단 두 가지에 달려 있다. 첫째, 정부가 예산과 권한을 실제로 호남에 우선 배치할 용기를 내는가. 둘째, 호남이 그 기회를 숫자와 시간표로 증명할 능력 있는 리더를 세우는가.
현재 광주의 인구 절벽과 전남의 고령화는 더 미룰 수 없는 벼랑 끝에 서 있다. 정책은 이미 가진 곳이 아니라 가장 절박한 곳에서 시작돼야 한다. 중앙이 과감히 판을 깔고, 지역이 치밀한 설계로 응답할 때 비로소 수도권 일극 체제는 균열을 맞는다.
지금 호남이 그 시험다. 이 기회를 또 놓친다면, 균형발전이란 구호는 다시 표류할 뿐이다. 공은 이미 던져졌다. 이번에는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
민슬기 기자 journal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