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트릭 쇼벨 기자가 5·18 진실을 국제사회에 증언한 공로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1호 명예시민으로 위촉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제공) |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첫 명예시민 영예 부여는 광주의 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소중한 자료를 시민에게 돌려준 그의 헌신을 기리는 취지다. 이는 오월의 역사를 함께 증언해 온 국제적 연대와 양심에 대한 존중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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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패트릭 쇼벨은 베트남전과 이라크전 등 세계 주요 분쟁 현장을 누빈 저명한 프리랜서 사진기자다. 그는 1980년 5월 23일 고립된 광주에 잠입해 27일 새벽 전남도청 진압작전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항쟁과 계엄군의 폭력을 카메라에 담았으며, 미국 ‘뉴스위크’ 등을 통해 당시 현장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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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벨은 최근 자신이 보관해 온 사진 635점을 아무런 조건 없이 기록관에 기증했다. 기증된 자료는 국가폭력의 실체와 항쟁 현장을 생생히 증언하는 역사적 사료로 평가된다. 5·18 당시의 구체적 정황과 희생의 흔적을 되새기게 하는 소중한 자산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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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5월 27일 최후의 항전지였던 전남도청에서 끝까지 남아 싸우다 산화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의 마지막 장면이 담겨 있어 역사적 가치를 더한다. 이는 죽음을 무릅쓰고 도청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결연한 의지와 숭고한 헌신을 보여주며 민주주의를 향한 오월 정신의 무게를 깊이 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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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도청 진압작전 이후 계엄군에 의해 연행되는 시민들의 모습, 같은 날 아침 YMCA 건물 앞 도로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헬프 미”를 외치던 청년 고 김종연의 모습도 포착돼 있다. 이는 진압작전 이후에도 민간인을 향한 가혹행위와 강압적 통제, 현장의 긴박했던 상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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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도청 앞 운구행렬 곁에 서 있던 일곱 살 어린이와 다음날인 27일 계엄군에 붙잡혀 끌려가던 아홉 살 어린이의 모습 등 5·18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어린이들의 흔적이 자료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한 어린이는 계엄군을 피해 가까스로 서울행 버스에 올랐으나 이후 서울시립아동보호소로 보내졌고, 청소년기에는 부산의 보호시설에서 생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오월광주’에서 사라져 간 아이들의 행방을 추적할 수 있는 소중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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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벨은 “5·18 광주는 제 인생에서 가장 역사적인 현장이었다”며 “이 사진은 제 사진이 아니라 광주시민의 사진이다. 역사의 한 부분에 참여하고 기억을 지키는 길을 보여주는 이 자료를 공유할 수 있어 영광이다”라고 기증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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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기증 및 명예시민증 수여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는 23일 오후 2시30분 ‘세계에 알린 오월, 다시 광주로’를 주제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7층 다목적강당에서 열린다. 행사는 패트릭 쇼벨 특별강연회, 5·18유족과의 만남, 명예시민증 수여 순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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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쇼벨은 특별강연에서 1980년 5월 광주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기록한 상황을 중심으로 자신이 본 5·18의 참상과 역사적 함의를 시민들과 나눌 예정이다. 그는 고립된 광주에 잠입해 취재하며 마주했던 시민들의 항쟁과 계엄군의 폭력, 국제사회에 이를 알려야 한다는 당시의 절박함을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강연은 80년 5월 당시 광주의 진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세계에 알려졌는지, 한 장의 사진과 한 번의 기록이 역사를 증언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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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과의 만남’은 5·18기념재단과 공동주최로 진행된다. 쇼벨이 1980년 5월 촬영한 사진 속 인물의 유족들을 직접 만나는 자리다. 희생자와 행방불명자, 그 가족들의 존재를 다시 사회 앞에 환기하고 오월의 진실을 공동체의 역사로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민슬기 기자 news@newsjournal.co.kr















